방명록 03 guestbook



어느덧 세번째 방명록입니다.
주인장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계시면 이곳에 남겨 주세요:-)

*Matthew Gray Gubler
*웹펫을 추가했답니다! 태어날 수 있도록 마구 쓰담쓰담해주세요^ㅂ^
(09.11.11)
*BGM/ Jets Overhead - Where did you go? (09.11.18)

세미나 D-DAY 카스테라

1.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주최한 제 3회 범죄행동분석 학술세미나에 다녀왔다. 집에 도착한지 얼마 안돼서 나는 지금 매우 파김치 상태 (먼산) 기대했던 만큼 좋은 시간이었고 또 일부 실망한 부분(다들 업무상 바쁜 위치라 그런지 생각보다 발표준비가 좀 미흡해 보였던 점)도 있었지만..아니 근데 이건 아무리 프로파일러 요원분들이래도 학부생 조발표와 다름없는 발표자의 발표불안은 다 똑같은 것 같아서 나중에는 그저 훈 to the 훈ㅋㅋㅋ 전문가라도 절대 딱딱하지만은 않다는 인간미가 팍팍 느껴졌..?^_^; 아무래도 하는 공부가 공부다 보니 학부생 신분으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마 내가 당장 샤이니같은 아이돌을 봐도 그렇게 설레거나 두근거리진 않았을텐데 고등학생 때부터 동경해 마지않던 권모 경위님과 짧게나마 인사를 나눴던 그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 정말 내 심장을 미치도록 덜컥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 과거 얘기를 끄집어냈을 땐 정말 어찌나 긴장되고 떨리던지..친구도 내 그런 (빙구같은) 모습은 처음 본다며 마구 비웃어댔다orz 아무튼 경위님은 정말 기억을 하신건지 아니면 내가 민망해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신건진 모르겠지만 성심성의껏 친절하게 응해주셨고 어쨌거나 나는 '그 이후로 덕분에 열심히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떠듬떠듬 말을 건네면서..내딴에는 그득한 경애를 표하고 싶어 마치 이런 *ㅅ* 눈빛으로 어필했다곤 했는데 매우 쑥스러웠다. 얼굴이 화끈화끈. 이이상 바보같이 굴 수 없었기에 차마 '싸인해 주세요'라고는 못했다.orzorz 친구는 그런 나를 환멸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2. 대청마루 입구부터 진열되어있던 각 지방 경찰청 프로파일러들이 준비한 다양한 현장사례 일지와 연구 포스터들이 지금도 매우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주로 최근 연구동향은 '범죄현장의 재구성'과 '지리적 프로파일링'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새삼 빠르게 발전중인, 아니 이미 매우 우수한 실적을 쌓고있는 한국의 과학수사력에 감탄하게 된 시간이기도. 이건 여담이지만 사실 미드를 보다보면 거의 대부분 수사물의 갈래는 먼치킨이다. 사건 터진지 한시간만에 종결되는 도깨비식 수사는 분명 한편의 장황한 연출과 '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과학수사'에 대해서 굉장한 미신적 기대나 환타지를 심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블로그를 돌아 다니다 보면 이런 미국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 그리고 하다못해 주변의 몇몇 지인들만 보더라도 한국의 과학수사가 그런 미국의 티비 쇼에 비해 굉장히 형편없고 낡아빠진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봤는데 적어도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런 오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3. 본격적인 논문 발표 시간에도 그랬고, 세미나가 끝난 뒤 뒷풀이에서 한번 더 이것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었지만 K대 H모 교수님의 '성욕은 강물과 같이' 발언은 어쩐지 망언드립이었던 듯. 이건 나뿐만이 아니고 거기 있던 대다수가 아마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 (먼산) 아무튼 이론과 현장은 다르고, 이 리비도에 대한 논의는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인가 싶기도 했다. 

4. 2부에서 신모 경장님이 발표하신 <연쇄 강간범 지리적 프로파일링>의 자료가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진진했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는 닥터 리드가 이 지리적 프로파일링의 유용함을 예찬하며 꽤 자주 소개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에는 Geopros라는 시스템이 4월부터 운용중이며 실제 범죄 발생 장소 및 범죄자의 거주지 등의 공간적 특성을 분석, 특정 지역 내 범죄다발 지역을 분석하여 범죄예방에 기여토록 하고 있단다. (간추린 요약은 발표논문집 참고함) 발표자료를 보며 이 시스템이 과학수사에 어떻게 응용되는지 그 실례를 들어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보니 더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수학적 통계와의 씨름에서 승리해야한다는 점은 좀 서글픈..

5. 그런데 성범죄가 주제였던 것 치고는 뭔가가 허전했다. 아무래도 시간에 너무 쫓기다보니 그런 것도 같고. 

6. 지금부터는 뻘말이지만 조두순 사건을 포함해 한참 굵직한 사건들로 성범죄에 대한 여론이 들끓기도 했고 마침 적절한 시점에 수사 상황에 관심이 고조된 대중들의 이해를 돕는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프로파일링 자체가 아무래도 범죄자의 검거에 초점이 맞춰진 이상은 이렇게 공개적으로 디테일한 학술 정보들이 노출되는 일은 좀 염려스럽지 않나 싶은. 사실 이번 세미나가 기존의 관련 종사자들 외에 개방적으로 참관이 허용되었던 만큼 이 자리에 범죄자가 있으면 어쩌나-_-; 싶은 괜한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이건 내가 크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걸지도ㅋㅋ 일단 세미나 뒷풀이는 끝내주게 맘에 들었다! 그동안 휴학 중이라 못봤던 선후배, 교수님과 오랜만에 만나 짧지만 즐거운 식사 한끼 함께 한것에 의의를 두겠거니:-) 근데 나 또 너무 즐겁다고 대책없이 30일에 약속 잡아 버렸다니?ㅋㅋ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군 앗싸. (물거품)  

7. 마지막으로, 이번 세미나를 통해 다시한번 깨달은 건 나는 역시 이 일을 여전히 미치도록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식지 않은 유일한 한가지랄까 다시 확인하게 된 것 같아 내겐 정말 의미 깊은 하루였어:-)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자! PS. 늘 강력범죄에 맞서 고군분투하시는 프로파일러 요원분들께도 감사인사를!!


캐러나비 동물점

http://www.charanavi.co.kr/

예전에 바이오리듬 체크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구경했던 사이트인데 한동안 닫혀있는 듯 했다가 다시 열린 걸 보니 반가웠다. 기념으로 다시 테스트. 예나 지금이나 방랑하는 늑대는 변함없다. 근데 외견이 너글너글하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야? @_@

커뮤/ 잃어버린 이름 -성녀 데릴라- (이벤트 1th) village, aporia

쉬잔은 저택의 괘종시계가 정오를 알리는 종을 울릴 때까지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는 정확히 어제 저녁, 웨인이 헤이스팅스 공작의 가든파티 초대장을 전해준 이후로, 그리고 그와 차를 마시며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헤어진 시각부터 지금까지 쭉 뜬눈으로 멀거니 천장의 무늬만 헤아릴 뿐이었다.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는 붉게 충혈 되어 따끔거리기 시작했고 귓전에서부터 웅웅대는 왼쪽 골은 마치 둔탁한 물건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지끈거렸다. 과음을 한 건 아닌데도 그는 어제 자신이 웨인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다만 몇 시간 전쯤. 잠을 잔 건 아니지만 의식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두 사람의 노크소리를 들었다. 물론 자신은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을 테고 그들은 그런 자신이 곤히 잠들었다는 생각에 일부러 깨우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는 겨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어제 마시고 남은 차를 따라 알약 하나를 같이 삼켰다. 서재는 언제나처럼 빛이 들지 않았고 그 방안 가득 자신의 와인 빛으로 물들인 벨벳 커튼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늘어져 바깥과의 차단막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두 번째로 잔을 채워 가까이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가 앉는 방향은 언제나 굳게 쳐진 커튼으로 보일 리 없는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그는 그렇다고 부러 몸을 틀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침대 맡에 떨어진 '노트 한권'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지금 자신이 왜 이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는지 알 것 같았다. 식어버린 차에선 당장 그 어떤 향기도 음미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이름 -성녀 데릴라-
written by. Dorian


헤이스팅스 공작가로 향하는 마차에서 쉬잔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 거기 쓰여진 짧은 메모들을 찬찬히 훑어 내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온 귀부인들에 대해 낱낱이 적혀있는 그것은 어쩌면 그네들에게는 발각 되선 안 될 치부인 반면 혈기 왕성한 젊은 작가에게는 대단한 영감의 원천이자 '시상'(詩想) 그 자체였다. 사실 그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상태임에도 가든파티에 흥미가 동한 것은 어제 웨인이 건넨 헤이스팅스 공작의 초대장 사이에 끼어져있던 다른 '쪽지' 때문이었다. 그는 그 작은 종이를 손안에 굴리며 다시 한 번 내용을 곱씹었다.

「FOX, 바쁜 남편대신 당신이 날 에스코트해 준다면 더욱 즐거운 파티가 되겠지요. 프림로즈 살롱 후원에서 당신의 아카시아 향기를 기다릴게요.」

딱히 보낸이의 신상명세가 적혀있지 않더라도 그 필체를 보건데 '밀라디 예이츠' 후작부인의 것이 맞았다. 그때 그 이름을 떠올린 순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치 빠른 웨인이라면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그래서 전에 없이 술을 권한 건지도….' 그는 아주 드문드문 기억나는 어제의 단편에 대해 이제야 어느 정도 그 의문이 해소된 것처럼 보였으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찝찝한 기분이 없잖아 들었다. 분명 그 뒤에 웨인이 '무슨 말'인가를 했고 자신은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그에게 큰소리로 언성을 높였던 것도 같았다. 그는 이 이상 기억나지 않자 '젠장…'하고 말꼬리를 흐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쪽지에 쓰여진 '폭스'는 그녀, 밀라디 예이츠 후작부인이 쉬잔에게 붙여준 애칭이었다. 그것도 거의 그녀의 억지에 가깝긴 했지만.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자신이 위기에 처한 예이츠 후작의 공문서 사건을 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일전에 살롱에서의 만남이 한번 연기되었기 때문에 쉬잔에게 실례를 끼쳤다고 생각한 후작은 대단히 미안해하며 오래지않아 자신의 저택에 초대해 꽤 근사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예이츠 후작은 그 후덕해 보이는 인상만큼이나 사람 좋아하고 어진 인심으로 평판이 자자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한참이나 연배가 어린 자신에게 그리 신경써주는 것이 으레 귀족들이 예의에 대해 갖고 있는 강박적인 행동처럼 딱딱하게 비춰지진 않았다. 그날 자신에게 사심 없는 친절과 속에서 우러난 감사인사를 전하는 집안 하인들의 태도에서도 여러모로 주인의 인품이 배어나온다고 생각하자 퍽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 저택의 '안주인'만은 쉬잔과의 첫 대면부터 이미 집안 가솔들이 느끼는 고마움과는 그 종류가 다른 듯 했다.

레이디 밀라디는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머리를 우아하게 늘어뜨린 어깨에 포도 덩굴이 수놓인 자줏빛 숄을 두르고 있었는데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육감적이었다. 적어도 디너를 함께하는 테이블 '위'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정숙하고 고결한 현처의 대명사였다. 간혹 예이츠 후작이 꺼낸 사업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거워질라치면 때때로 자신이 그 배턴을 이어 온화한 미소와 눈짓으로 누그러뜨리면서도 남편의 기를 세워주기도 잘하고 그의 시덥잖은 농담에 웃기도 잘했는데 이쯤 되니 예이츠 후작의 입가에 날마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만했다. 하지만.

테이블 위로는 성녀의 탈을 쓰고, 그 '아래'로는 요부 데릴라의 모습을 한 이 능구렁이 같은 여자는 시종일관 의뭉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꽤 대담하게도 자신의 다리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쉬잔의 허벅지를 끊임없이 더듬으며 추파를 던지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능청맞게 남편의 농담엔 일일이 맞장구치며 소녀처럼 웃는 모습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쉬잔 역시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식사에만 열중하느라 예이츠 후작이 늘어놓는 장황한 영웅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는데 도중에 후작이 쉬잔의 안색을 살피며 너무 긴장한 것 아니냐고 한바탕 웃고 나서야 이 위험천만한 상황도 일단락되었다. 그는 이 가련한 후작이 테이블 '아래'에서 벌어진 웃지 못 할 해프닝에 대해선 전혀 짐작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같은 남자로서 왠지 모를 연민까지 느껴졌었다. 쉬잔은 밀라디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교태어린 시선에 대응해 조용히 한번 미소 지은 것이 다였다. 아마도 그 미소가 '지금',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것이리라.





에른스트 백작의 마차가 헤이스팅스 공작 가에 거의 근접했을 때 저택 앞에는 벌써 여러 대의 마차가 도착했거나 떠나는 중이어서 그 근방은 온통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막 입구로 들어서는 귀족들 중엔 일전에 살롱에서도 몇 번 마주친 듯한 익숙한 얼굴들도 눈에 띄었다. 아마 그쪽에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 인사는 좀 더 천천히 나누기로 하고 쉬잔은 바로 살롱으로 드는 대신 후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그곳에서 후작부인을 기다리는 동안 지금껏 자신이 상대해온 귀부인들의 면면을 회상했다. 대부분 자신이 만난 부인들은 불임이거나 나이가 너무 많거나 혹은 외모가 박하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딱한 처지였는데 대개 이런 부인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유했고 자신처럼 젊은 남자를 꼬드겨 후원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이런 편협한 방식으로 남편의 관심을 구걸하는 대신 '복수'를 꿈꾸었다면 쉬잔은 어떻게든 그들을 도왔으리라 생각하며 아쉬운 입맛을 다셨지만 현실이란 테두리는 그네들을 쉽게 여성의 탈을 벗도록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난 숙녀들을 '여성'이란 이유로 사랑하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

그는 막 후원의 입구로부터 서서히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한 장면에 그만 얼빠진 사람처럼 쳐다만 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 실루엣은 오늘의 파티를 위해 한껏 화려하게 치장한 레이디 밀라디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녀를 옆에서 에스코트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바빠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던 예이츠 후작이었다. 쉬잔은 크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에 하마터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떨어뜨릴 뻔했다. 순간 그들을 둘러싼 공기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예이츠 후작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심히 좋지 않았다.

"어서 오게, 에른스트 백작. 밀라디 말로는 자네가 아카시아 꽃다발을 들고 올 거라던데 그게 사실이었군."

그러면서 그는 '그 꽃은 내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지'하고 덧붙이며 꽤 날이 선 눈빛으로 쉬잔을 바라보았다. 레이디 밀라디는 그런 쉬잔을 바로보지 못하고 예이츠 후작의 품에 더 깊숙이 안겨들었다. 쉬잔은 저 여우같은 여자의 교활함에 속으로 치를 떨면서 이미 엎질러진 이 같은 상황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최대한 젠틀하게 모면할 궁리를 꾀하면서. 마침 뇌리를 스치는 경구 하나에 쉬잔은 입 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짧지 않은 작가경력을 자찬하는 쾌재의 미소를 띠워 올렸다.

"하지만 후작부인께서 약간의 오해가 있으셨나 봅니다. 후작께서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카시아 꽃의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 감히 제 손으로 드릴만한 것이 못되니 후작님께 대신 전해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얼결에 쉬잔이 건넨 꽃다발을 받아든 예이츠 후작의 표정은 일말의 수치심과 노여움이 뒤섞여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나 레이디 밀라디의 얼굴은 그보다 더 유령처럼 하얗게 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날 자신의 유혹에 만만하게 걸려든 쉬잔을 팔아넘겨 남편의 환심을 얻으려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녀는 치욕감에 앙다문 입술을 짓이기며 두 손을 파르르 떨었다. 한편 자신에게 매달리는 밀라디를 고깝게 떼어낸 후작은 가까스로 넘치는 분을 삭이며 그 꽃다발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만개한 아카시아 꽃잎은 바닥에 흩어지는 와중에도 더욱 요란한 향내를 풍겼다. 코를 찌르는 그 향기에 쉬잔은 고개를 살짝 틀어 동상처럼 우두커니 선 그녀를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이참에 좋아하는 꽃을 바꿔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아카시아'말고도 다른 좋은 꽃들이 많은 계절이 아닙니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손안에 쥔 쪽지를 불살라 버린 뒤 씁쓸한 미소를 거두고 살롱으로 향했다.



이건 정말 본적없는 망작이다..orz
http://blog.naver.com/sulhyang99?Redirect=Log&logNo=50075679914
꽃말은 이곳에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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