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동안 불규칙적으로 밤을 며칠씩 꼬박 새고, 끼니 거르고, 기분은 우중충하고 그 와중에 붙잡고 있는 글은 안써지다보니 정말 여러가지로 컨디션 난조가 맥스였다. 어제 다섯장 정도 분량의 글을 겨우 완성했을 때의 시간도 대략 새벽 다섯시 반. 그리고 나서 분명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던 것 같은데 무엇보다 당장 바깥 공기 좀 쐬어야 겠다는 어떤 이상한 의욕이 막 솟구치는 바람에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집을 나섰다. 과제처럼 남아있는 글이라던지 우울한 기분 때문에 한 삼사흘 정도 집에만 있었더니 신체도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나 보다. 한글문서를 저장하고 노트북을 종료한 순간 그대로 집을 나서면서 정말 반작용처럼, 마치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 내 의지라기보단 신체 어딘가의 굉장한 욕구에 등 떠밀려 나온 기분이었다. 분명 머리가 띵하고 몸살 기운이 좀 있었는데도 이불을 물리고 급하게 뛰쳐나간 걸 보면 그땐 정말 뭐에 홀렸던 건지. 확실히 환기가 될 필요는 있었다. 이왕 밤 샌거 아예 자지 말아버려?싶은 생각도 좀 들었었고. 괜히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있지만 요지는 그거다. 머리로는 분명 잠을 자야한다고 생각했으면서 신체반응에 못이겨 새벽 공기를 쐬러 나와버렸다는 사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신기했다.
나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가을'의 플라타너스 나무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여름의 막바지부터 가을의 끝까지 라임빛에서 주황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점묘법으로 채색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 나무를 볼때마다 가장 나무답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전시회에서 좋은 그림을 보는 것 만큼 시각적인 즐거움을 얻는다.
본격적인 산책에 앞서 한컷. 상쾌한 공기도 좋았지만 이날따라 감회가 새로웠다. 매번 오는 산책로임에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명화'라고해서 반드시 캔버스 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잠시.
이날 건진 베스트 컷. 사실 이 사진은 다음 장면이 더 멋있다. 앞서 걷는 할아버지가 미끌어질뻔한 할머니의 손을 잡는다. 산책로에선, 특히 이른 시간 때에 이렇게 금술좋은 노부부들을 많이 볼 수 있어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이 산책로에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뒤에 돌아가선 잠을 굉장히 오래 잤다;) 사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비싼 돈을 내지 않고도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는 곳곳에 많이 숨어있다.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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